6. 참선의 자세

참선의 복장 및 자세

참선을 할 때는 되도록 여유 있고 편안한 복장이 좋습니다.
의복은 여러 겹 입는 것보다는 얇게 입어서 통풍이 잘되고 기氣의 순환이 원활하도록 합니다.
복잡한 디자인이나 다양한 무늬의 옷보다는 단순한 디자인과 단일한 색상의 옷이 마음을 순일하게 해줍니다.
항상 깨끗한 상태로 입을 수 있도록 세탁에 유의합니다.
허리띠는 느슨하게 매고, 안경이나 시계, 꽉 조이는 액세서리 등은 풀어 놓습니다. 콘택트렌즈 등도 빼는 것이 좋으나 가능한 경우에 그렇게 합니다.
참선을 할 때는 온몸을 자연 상태에 가깝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참선의 자세

방석은 가능하면 두꺼운 방석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방석이 너무 푹신하거나 너무 딱딱해서 자세가 흔들리거나 다리에 부담을 주어 자세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합니다.

다리는 통상적으로 반가부좌나 결가부좌의 자세로 허리를 곧게 펴고 앉습니다.
반가부좌는 초보자도 가능하지만 결가부좌의 경우, 초보자의 경우에는 무리가 올 수 있습니다.
이른바 전래의 양반 다리라 부르는 아버지 다리 자세를 해도 무방하며, 무릎을 꿇어서 두 발을 엉덩이 밑에 가지런히 모으는 자세도 괜찮습니다. 다만 허리를 곧게 펴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어떠한 자세를 취하든지 참선은 바르고 단정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몸이 바르면 마음도 바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세에 무리가 가서 몸에 힘이 들어간다든지, 안정적이지 못하면 안 됩니다.
참선을 할 때 중요한 것은 먼저 온몸의 긴장을 푸는 일입니다. 몸의 긴장을 풀어야 마음에 걸림이 없게 됩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참선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참선은 마음에 관련된 집중적 작업입니다. 마음 작업을 하는데 몸의 자세가 불안정하여 신경을 몸으로 돌리게 만들면 마음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온몸의 긴장을 이완하고 몸을 가장 순수한 상태로 두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온몸의 긴장은 다음의 순서로 하나씩 풀어갑니다.
머리와 얼굴(이마, 미간, 눈, 귀, 입, 혀) → 목과 양어깨 → 팔과 손 → 등, 가슴, 배, 허리 → 엉덩이와 다리와 발
이와 같은 순서로 온몸을 이완시켜서 더 이상 마음이 몸에 신경을 쓰는 일이 없도록 합니다. 그렇게 앉은 자세에서 가장 편한 마음과 바른 자세로 참선에 들어갑니다.

참선을 할 때는 얼굴 전체의 굳어진 표정을 약간 미소 짓는 기분으로 풀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에게 미소 짓는 마음으로 얼굴 전체의 근육을 이완시켜서 내면의 평화를 불러들입니다.
눈은 반개(半開 : 반쯤 뜬 상태)하여 시선을 자연스럽게 바닥의 일정한 지점에 고정합니다. 눈을 반개하면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주변 환경이 산만하거나 마음이 들떠있을 경우에는 눈을 감고 참선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다만 이때는 잠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반개한 눈

턱을 지나치게 앞으로 빼거나 뒤로 당기지 않도록 목선을 바르게 세웁니다.
척추를 중심으로 하여, 정수리의 백회혈百會穴과 엉덩이 부위의 회음혈會陰穴이 일직선을 이룰 수 있도록 자세를 바로 세웁니다. 이 상태를 옆에서 관찰하면 엉덩이를 뒤로 조금 뺀 듯한 자세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온몸에 힘이 들어가거나 경직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윗니와 아랫니를 살짝 다물고 혀를 입천장에 가볍게 붙입니다.
이때 혀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혀를 입천장에 붙이는 이유는 척추를 따라 올라온 독맥督脈과, 중단전과 하단전으로 이어지는 임맥任脈이 혀를 통하여 연결됨으로써 임맥과 독맥이 하나의 회로를 형성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참선 시 백회혈과 회음혈

양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하도록 하여 오른 손바닥 위에 왼 손바닥을 손가락 마디 부분이 겹친 상태로 하단전 부위 앞에 가볍게 놓습니다. 두 엄지손가락을 마주 붙여도 됩니다.
이렇게 참선의 자세를 취하면 인체는 입체적인 삼각형의 형태를 이루게 됩니다. 삼각형은 도형 중에서도 가장 안정된 형태의 도형입니다.
또한, 삼각형은 가장 인간다운 형태이기도 합니다. 선인들이 하늘·땅·사람을 ○·□·△(원·방·각)으로 나타냄으로써 사람을 삼각형으로 표현했듯, 참선은 삼각형 자세를 취함으로써 가장 인간다운 형태를 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각형 자세는 인간의 몸으로 지구의 중력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자세이기도 합니다. 중력은 육체적인 본능을 강화시키는 힘입니다. 참선 자세는 중력의 영향을 최소화함으로써 본능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본성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줍니다.
참선은 인간이 지닌 하늘 문을 열어주는 고도의 정신적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성을 밝히는 수행법이기 때문입니다.

삼각형의 의미
선인들은 하늘을 ‘○’로, 땅을 ‘□’로, 사람을 ‘△’로 표현했다. 이는 한민족 고유의 천지인 사상에 의한 것으로, ‘하늘이 있어 땅을 지으시니, 땅 위에 내가 있다.’는 창조의 원리를 나타낸 것이다. 
즉, ‘하늘>땅>사람’인 것이다.

마음의 자세 ① - 정리와 설정

참선은 마음을 통하여 내면의 본성, 곧 원심에 도달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어떠한 걸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참선은 자기 마음의 깊은 바닥으로 내려가는 작업입니다. 깊이 내려가야 하는데 걸림이 있다면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었다거나 혹은 스스로의 행동이나 마음가짐에 잘못이 있다면 양심에 거리끼기 때문에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살아가는 것은 업을 쌓아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스스로의 행동이나 마음가짐에 잘못이 없다 해도 마음의 속성 자체가 절대적인 올바름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순간은 올바른 마음이라 해도 다음 순간에는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할 때는 먼저 자신의 마음가짐이나 행동 일체에 대하여 반성함으로써 마음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자기를 설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참선의 시작은 마음의 ‘정리와 설정’입니다. 마치 흐린 호수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부유물들을 가라앉혀야 하듯, 정리와 설정을 통하여 어지럽혀진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먼저 스스로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점검합니다.
하루 동안 행한 모든 말과 행동이 마음속의 뜻과 일치했는지?
부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는지?
지나친 탐욕과 집착으로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았는지?
오만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슬픔과 괴로움에 길을 잃고 방황하지는 않았는지?
자만으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상대방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타인을 아프게 한 일이 있다면 돌아보고 반성합니다. 설령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게 했을지라도 그에 상응하여 똑같이 부정적으로 대하였던 나를 반성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나머지 자기 잘못에는 관대합니다. 쉽게 알아차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객관적 시각에서 자신을 점검해나가다 보면 스스로의 잘못된 점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반성한 다음에는 새로이 방향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가다듬게 되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지나간 문제를 현재까지 끌어안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이 순간 새로 태어난 것과 같이 스스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잘못된 점이 있다면 고쳐가도록 합니다. 부정적인 일면이 있다면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꿔갑니다.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러니 바로 나 자신만이 미래의 나를 만들어갈 장본인입니다. 이 순간부터 스스로를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꾸어 가고자 다짐합니다. 이렇게 일체의 부정적인 것에 대하여 반성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설정한 다음에라야 비로소 원심에 다가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마음의 자세 ② - 이완과 집중

정리와 설정을 통하여 마음속에 어떠한 걸림도 없게 되면 의식은 자연히 사물이나 사건 등 주위 환경에서 벗어나 내면으로 향하게 됩니다. 마음은 점차로 가라앉아서 깊은 고요 속으로 침잠합니다.
이때 마음은 비워져 이완弛緩(느슨해 짐)되어 있어야 하지만 의식意識은 고도로 집중되고 깨어있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완과 집중의 순서를 정해야 한다면 짧은 순간의 차이이기는 하지만 먼저 이완하고 그다음에 집중을 실천하여 곧 양자를 동시에 실현시켜야 합니다.
이완과 집중을 동시에 실현한 상태, 이는 얼핏 생각하면 모순적이지만 이런 상태가 되지 않으면 마음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음은 파헤쳐야 할 땅과 같아서 꽁꽁 언 상태보다는 풀린 상태가 좋습니다. 곧 이완하는 것이 마음을 탐구하는 전제 조건이 됩니다. 또한, 의식은 보습(쇠로 만들어진 쟁기의 날)과도 같아서 땅을 파헤치기에 좋도록 날카로우면서도 강한 것이 효율적입니다. 곧, 집중된 의식 상태로써만 마음을 탐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완되어 부드러운 마음의 토양에 보습과 같이 강하고도 예리한 의식으로 마음 밭을 가는 것이 참선입니다. 마음 밭을 경작하려면 이와 같이 이완과 집중이라는 부드러움과 강함의 양자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경작’(단원 김홍도 作)
마음 밭은 이완하여 파 내려가기 쉽도록 느슨하게 하고, 의식은 날카로운 보습과 같이 고도로 집중한 상태가 참선이다.

마음의 속성 ① - 마음은 육체의 산물

이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마음의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호수 표면에 쉼 없이 일렁이는 잔물결처럼, 마음은 한 시도 쉼 없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습니다. 한 생각이 사라지면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 식으로, 마음은 잠시도 쉬지 않고 흘러갑니다.
만일 생각을 억지로 지우려고 노력하면 그 지우려는 생각 자체가 강해져서 마음을 더욱 적극적으로 강화시키는 형국이 됩니다. 그러니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이 흘러가는 모양을 가만히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참선을 시작하십시오.
마음은 변화합니다. 한순간도 멈춤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은 불과 몇 초 만에 수명을 다합니다. 마음은 영원성이 없으며 절대적이지도 못합니다.
사람들은 감각, 느낌, 생각, 의욕 등 육체적 속성의 부산물인 일반적인 의식상태, 곧 마음을 순수의식 혹은 원심元心과 같이 영원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각, 느낌, 생각, 의욕 등의 심정적(Psychomental)인 경험은 정신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물질계에 속한 것들입니다.
곧 마음이란 물질과 육체의 산물로서, 순수의식인 원심과는 구분됩니다.

일렁이는 마음의 잔물결

마음의 속성 ② - 투사

마음은 항상 투사透寫합니다. 투사란 마치 영사기가 화면에 영화를 비추어 화면에 영화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상태를 의미하는데, 사람 역시 인식의 과정이 이와 같습니다. 사물이나 관념을 자기 마음에 투사하여 그 투사된 것을 다시 인식하는 과정을 거쳐야 인식이 됩니다. 투사는 마음의 상습적인 작용 형태입니다.
극장에 가서 커다란 화면으로 실생활을 담은 필름을 보면서 그 화면 자체를 실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필름 속에 진수성찬이 차려졌다고 해서 그 음식을 먹으려 드는 사람은 없으며, 화면을 보다가 바다가 보인다고 수영하려 드는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화면의 영상은 실물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마음에 투사된 영상이 실물이고 실제라고 믿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계의 모든 사물은 영화관의 화면에 나타난 영상과도 같이 실물이 아닙니다. 어떠한 것도 마음이라는 화면에 비춰져야 비로소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상과 인식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마치 필름에 찍힌 실제상황과 화면의 영상이 별개인 것과 같습니다.
마음은 화면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화면에는 어떠한 그림도 나타날 수 있지만 정작 마음은 영상을 켜고 끄는 주인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은 단지 투사하는 작용을 지녔기에 실물을 투사하여 비춰주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화면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영사기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영사기는 화면이 돌아가고 안 돌아가고를 결정하는 주인공입니다. 이 영사기와 같은 존재가 바로 순수의식이라 부르는 원심, 곧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인 바탕마음입니다.

현상계에서 유일한 실재實在가 바로 이 원심입니다. 마음이 포착한 어떠한 것도 실재가 아니지만, 드러나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가동하고 돌아가도록 하는 원심이야말로 현상계에서 홀로 실재하는 존재(독존자獨存者)입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참선을 지칭하기를, ‘실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면과 영사기
마음은 화면과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으나 원심은 영사기와 같이, 마음이 작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근원적 존재이다.

마음의 속성 ③ - 해설자

마음은 항상 해설자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과거형입니다. 달리기 시합을 중계하는 해설자는 선수의 동작이 지나간 이후라야 해설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미래를 생각하고 있을 때일지라도 마음은 항상 과거형입니다. 마음이 현재형인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마음이 현재형인 경우는 마음이 비었을 때(무심無心, no mind)를 빼고는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거나 느끼고 생각하는 순간과 그 경험을 인식하는 시점은 엄밀히 판단할 때 시차時差가 있습니다. 인식은 항상 경험의 뒤에 옵니다. 수백만 분의 일 초일지라도 우리는 경험 자체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경험은 항상 인식하기 전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거나 느껴도 그 모든 것은 과거의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이라는 인식 수단을 사용해야만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마음의 속성 자체가 해설자이기 때문에, 해설하는 순간 이미 선수는 앞으로 달려나간 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상태를 자기인 양 생각하는 것은 마치 현재는 없어진 다른 존재를 자기인 양 착각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마음을 가동하고 있는 한, 우리는 현재, 여기에 실재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가동하고 있는 한, 우리는 현재형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작용이 있는 한 인식은 항상 경험한 이후에 일어난다. 마음의 작용이 정지한 무심의 상태에서만 인식과 경험이 함께한다.

마음의 속성 ④ - 비우기와 정지하기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마음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생겨나고 소멸합니다.
계속 생겨나는 마음을 한순간 비워낸다 해도 어느새 또 다른 마음이 치고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쉴 새 없이 생겨나는 마음을 바라보는 또 다른 마음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바라보는 또 다른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마음의 심층을 파고들어 가다 보면 어느 한순간 마음의 흐름이 느려져서 고요해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 우리는 마음을 정지시킵니다.
일체의 흐름을 정지시킨 상태.
의식 안으로 들어오려고 기를 쓰는 마음을 한쪽으로 밀어놓습니다.
……


마음이 작동을 멈춘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원심에 도달했습니다. 원심이 자기 안에 드러나 있습니다.
몇 초나 될까요?
선인들은 원심이 드러낸 상태를 10분만 지속시켜도 해탈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본바탕(원심元心)을 보는 것, 이것이 바로 견성見性입니다.
견성은 성性을 본다(見)는 뜻으로서, 성性이란 마음(忄)이 생겨나는(生) 자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性 = 忄 + 生’
마음이 생겨나는 자리는 본성本性이요, 원심이며, 정심입니다.
또한, 이 자리야말로 인간이 지닌 진면목이며, 인간이 지닌 하늘입니다.

마음의 다양한 층들은 마치 벗겨도 끝이 없는 양파껍질과 유사하다. 하지만 모든 껍질을 벗기고 난 제일 깊은 곳에는 본성, 원심이 있다.

마음의 속성 ⑤ - 원심회귀

마음이 정지한 순간, 마음의 작용이 사라지면 의식은 물질과 육체라는 한시적인 존재로부터 벗어나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본질로 돌아서게 됩니다.
원심, 본성, 천심, 하늘의 마음, 실재, ‘진정한 나’를 찾은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이렇듯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원심, 하늘, 본성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선을 통해서 도달하는 이 원심은 옳고 그름, 좋고 싫음의 분별이 없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무심無心이라고 합니다.
원심은 너와 내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일원계입니다. 그래서 무아無我입니다.

본래 참선은 앉아서 행하는 좌선坐禪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몸이 불편할 때는 누워서 와선臥禪을 할 수 있고, 걸으면서 하는 행선行禪도 있습니다. 나아가 일상생활 전체를 원심의 상태로 일관하는 생활선生活禪을 행하기도 합니다.
마음으로 살지 말고, 존재해야 합니다.
일할 때는 존재 전체로 일하고, 먹을 때는 존재 전체로 먹으며, 사랑할 때는 존재 전체로 사랑하는 삶, 이것이 곧 사람 속의 하늘·땅·사람을 완성한 것이며 진정한 원심회귀元心回歸인 것입니다.

참선은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
참선을 통하여 마음이라는 틀을 벗어버리고 ‘거짓된 나’를 떨쳐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나’를 만나게 된다.

마음의 상태와 뇌파의 변화

참선의 진행에 따른 마음의 변화는 인간의 뇌파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뇌파란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를 기기를 통해 증폭한 것을 말하며, 의식상태에 따라 베타β파, 알파α파, 세타θ파, 델타δ파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참선을 하게 되면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뇌파가 변하게 됩니다. 평상시의 육체 활동 중에 나타나는 베타β파가 사라지고, 대신 명상파로 알려진 알파α파나 세타θ파가 나타나게 됩니다.
참선이 깊어질수록 뇌파는 낮아지는데, 0 헤르츠(Hz)에 가까워질수록 의식상태가 점차 절대계라 부르는 원심에 근접하게 됩니다.

인간 의식의 여러 차원